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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호] 신뢰와 믿음은 연구자를 춤추게 한다 - 한국천문연구원 캠퍼스 이덕행 학우

  • 조회 : 486
  • 등록일 : 2016-03-29
From Abroad

벨기에, 과연 어떤 한 단어로 이 나라를 표현할 수 있을까? 해외연수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벨기에로 떠날 때만 해도 나는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와플과 맥주, 유명 TV프로그램의 출연자인 줄리안 정도가 전부였다. 서울에서 수도 Brussels로 가는 직항이 없어 네덜란드 Amsterdam 공항에 내려 새벽공기 속 유럽에 첫 발걸음을 내딛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부터 나는 연구를 제외하곤 벨기에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이 수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덕행 - UST-KASI(한국천문연구원) 캠퍼스, 천문우주과학 전공(통합과정)

 

벨기에 최고의 대학교에 몸담다
나는 해외연수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항공권 및 체류비 지원을 받아 Gent라는 도시로 갔다. 내가 머물렀던 Ghent University는 벨기에 최고의 명문대로 불리는 곳으로 1817년에 설립되어 2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벨기에 최초의 우주인인 Dirk Frimout를 비롯해 Ghent University를 졸업한 많은 인재들은 노벨상, 세계식량상 수상 등 국제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단다.

나는 이곳에서 maarten baes 교수님과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복사전달 연구 분야의 대가 중 한 명으로, 독자적인 복사전달 시뮬레이션인 SKIRT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천문학이 전공인 나는 SKIRT를 사용하여 외부은하의 먼지에 의해 별빛이 산란되어 보이는 복사전달 시뮬레이션을 연구했다.

연구실에서는 매일 아침과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커피타임이 있었는데 각자의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 나와 연구관련 주제 뿐 아니라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얘기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 시간들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수직문화가 아닌, 논리적인 토론 문화 속에서 나이와 직책에 상관없이 서로의 주장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의견을 좁혀가는 열린 대화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신뢰 속에서 싹트는 연구를 향한 열정
연구실 박사과정 친구들과 함께 쭉 생활하면서 생각해 보게 된 단어가 있다. 그건 바로 연구자로서의 ‘책임감’이다. 물론 한국 학생들이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연구를 하는 점이 본받을 만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정신, 과연 무엇 때문에 가능한 걸까? 여러 가지 문화적, 환경적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합리성에 바탕을 둔 믿음과 신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maarten 교수님은 학생들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연구에 진척이 없을지라도 학생을 찾아가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늦어진 배경을 공유하고 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합리적인 연구 방향을 함께 잡아가는 것이 교수님의 지도방식이었다. 실수를 해도 지적당하거나 추궁하지 않았다. 연구실에서는 어떤 조그만 노력일지라도 칭찬으로 보상 받았다. 이러한 신뢰와 믿음 속에서 나는 연구 자체가 좋아졌고, 더 깊이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결국 학생들은 연구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인식으로 책임감 있게 연구를 수행한 것이다.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220편 이상의 논문과 4800회 이상의 인용횟수(H-지수 37)를 자랑하는 maarten 교수님과의 연구실적도 이런 연구문화가 바탕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연구자 역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결과를 만든다. 나는 앞으로 또 다른 시간을 함깨하게 될 사람들에게 따뜻한 연구자가 되고싶다.
 

벨기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남는 건 사람이라고 했던가. 연수기간 동안 연구 측면뿐 아니라 벨기에에서의 추억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다름 아닌 maarten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은 바쁜 일정에도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들과 함께 풋살 경기를 즐기곤 했다. 심지어 실력도 상당했다! 학과에서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마주치면 양손으로 어색한 ‘V’를 그리며 활짝 웃어주던 maarten 교수님. 친구처럼, 때로는 동료처럼 많은 도움을 준 maarten 교수님 덕에 벨기에에 있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같은 연구실 박사과정 친구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했다. 벨기에는 비가 자주 내렸지만, 여름에는 햇볕이 내리쬐는 환상적인 날씨가 이어졌다. 그런 날이면 연구실 친구들과 야외에서 Viking Kubb이라는 나무막대기 던지기 놀이도 하고,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곤 했다.

연구실 친구들은 한국에 가지 말라며 아쉬운 마음을 장난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작별인사는 꼭 하라고 누누이 말하던 물리학과 친구부터, 축구를 좋아하는 날 위해 지역 축구팀 ‘KAA 헨트’의 유니폼을 깜짝 선물한 연구실 친구들, 그리고 믿음과 신뢰의 가치를 일깨워준 maarten 교수님까지…. 나는 UST 해외연수를 통해 만족할만한 연구 성과를 얻었고, 또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 연구자 역시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결과를 만든다. 나는 앞으로 또 다른 시간을 함께하게 될 사람들에게 따뜻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

 

From-abroad4

 

나는 이번 해외연수를 통해 소중한 한 가지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향한 ‘믿음’의 가치다. 단순히 이번 연수를 통해 얻은 논문 한 편의 실적을 넘어 믿음과 신뢰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보고 배운 시기였다. 앞으로 나와 함께 연구하게 될 누군가가 혹 넘어질 수는 있어도, 내가 줄 수 있는 조그만 믿음과 신뢰를 통해 다시 일어나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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