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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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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의 과학기술, 빛의 측정에서 물질파 관측까지

  • 조회 : 161
  • 등록일 : 2020-12-01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과학기술, 빛의 측정에서 물질파 관측까지의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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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의 과학기술, 빛의 측정에서 물질파 관측까지

정영욱 교수(UST-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캠퍼스)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는 후대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라고 이야기하는 실험에 도전하였다. 실패는 성공보다 더 오래 기억해야 함에도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마이컬슨의 실패는 훗날 그에게 미국 최초의 노벨상 수여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마이컬슨은 당시 매우 뜨거운 논쟁 주제였던 에테르(aether)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스스로 가장 정밀한 측정방법을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지금은 마이컬슨 간섭계라고 알려진, 빛을 두 개의 경로로 나누었다가 다시 합쳐서 간섭을 이용하여 측정하는 간단한 장치였다. 빛이 두 개로 나누어진 상태에서 어느 한쪽에 상대적인 미묘한 변화가 있으면 합쳐진 간섭무늬의 밝기가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당시 물리학자들 중에는 음파, 지진파와 같이 빛 파동도 매개체를 통하여 전파한다고 믿는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를 가득 채운 미지의 빛 매개체를 에테르라고 하였다. 마이컬슨과 몰리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서 에테르를 전파하는 빛의 상대 속도가 다르게 측정될 것으로 믿었다. 간섭계가 주위의 온도 변화나 진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였다. 단열된 건물의 지하에서 수은으로 가득 채운 욕조 위에 간섭계를 띄워서 진동을 차단하였다. 하지만, 측정한 결과는 그의 바람과 달랐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도 빛의 속도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지 않았다. 이후로도 간섭계를 더 정밀하게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이 이어졌지만 당연하게도 에테르에 의한 빛의 속도 변화를 측정하는 데 모두 실패하였다.

마이컬슨의 실패를 빛나게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에테르를 부정한 아인슈타인이었다. 19세기의 뛰어난 물리학자인 맥스웰은 아주 복잡한 설명으로 에테르의 존재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정리한 전자기파 이론에서는 역설적으로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한 상수였다. 아인슈타인은 이 사실과 에테르 측정 실험의 실패를 바탕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진공)의 우주에서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고 주장하였다. 더군다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경우에도 빛의 상대속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도 아인슈타인처럼 상상해보자. 태양계를 떠나거나 방문하는(서로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두 우주선에서 측정한 태양 빛의 속도는 모두 동일하다. 대신에 누구에게나 항상 일정하다고 믿었던 시간이 상대적으로 다르게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는 추론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이렇게 특수상대성이론이 탄생하였다. 빛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누가 관측해도 불변의 속도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후에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중력파의 존재를 예언하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공간이 중력과 만나면 휘거나 구부러지는 물질처럼 행동한다. 공간이 커지거나 줄어들면서 전파하는 중력파는 경험에 의존하는 우리의 인식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질량이 없는 무의 공간이 만드는 파동이므로 물질파의 속도는 빛과 같다.

인류는 블랙홀의 충돌이 만든 중력파를 백 년이나 더 지난 2015년 9월에 실제로 측정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역사적인 측정에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이 바로 수여되었다.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장치인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즉, ‘LIGO’의 핵심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이컬슨 간섭계였다. 최첨단 레이저기술을 사용하였고 정밀 기계 및 전자공학을 총동원하였지만, 기술의 핵심은 빛을 두 개로 나누었다가 다시 합쳐서 간섭을 이용하는 마이컬슨 간섭계의 크기를 엄청나게 키워서 정밀도를 높인 것이었다. 물리적으로는 이 간섭계가 약 4킬로미터 길이에 수직으로 된 두 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지만, 빛의 경로를 수백 배 더 길게 하려고 빛이 수백 번 왕복하는 파브리-페로(Pabry-Perot) 형태의 공진기를 추가로 이용하였다. 그래서 간섭계의 유효 크기를 1887년의 장치보다 수십만 배까지 더 키울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19세기에 만들어진 광학 기술이다.

과학이라는 학문은 오랜 기간 만든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를 더 얹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실패라고 규정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수많은 측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이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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